작가의 생각
teamLab은 왜 ‘경계 없는 세상’을 지향할까
teamLab의 대표 이노코 토시유키와 평론가 우노 츠네히로가 해설하는 teamLab Planets.
teamLab의 대표 이노코 토시유키와 평론가 우노 츠네히로의 4년간의 대화를 담아낸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 teamLab의 경계없는 세계’ 중, teamLab Planets에 대한 대화를 부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노코 토시유키, 우노 츠네히로 “인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 teamLab의 경계없는 세계”, PLANETS, 2019, p.230-241
Jinrui Wo Mae Ni Susumetai
2019.11.21
3080엔 (세금 포함)
‘의사를 갖고 변모하는 공간, 퍼져나가는 입체적 존재’ (Photographer : 이마죠 준)
이노코 오.
우노 물론 두 전시는 규모도 다르고 목적도 달라요. ‘보더리스'는 teamLab이 최근 몇 년간 해왔던 실내 인스털레이션 아트의 집대성이고, ‘플라넷츠'는 2년 전 ‘DMM.Planets Art by teamLab’ (이하 DMM플라넷츠)의 업데이트죠. 규모도 보더리스보다 작고요. 보더리스는 하루 반나절이 걸려도 다 돌아보기가 힘들고 전부 감상하려면 두세 번은 가야 하는데, 플라넷츠는 2~3시간이면 전부 볼 수 있어요. 그래도 후자는 좀 더 재치가 느껴지죠. 보더리스가 더 심혈을 기울인 전시인 것 같지만, 저는 플라넷츠의 실험적인 부분도 지나치기 어렵더라고요.
이노코 플라넷츠는 세상과 자신의 관계성에 대해 재고하게 하는 작품을 하나하나 제작해 관람객이 압도적인 퀄리티로 빠져들 수 있도록 구성돼있어요.
우노 아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전장에서 얘기한 “‘작품과 작품',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작품'이란 세 가지 경계의 교란”에 빗대어 얘기하자면, 플라넷츠는 ‘사람과 작품’에 특화돼있다는 점이 재밌어요.
저 같은 경우엔 그다지 타인과 융화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비평가니까 작품과 작품을 연결 지어 생각하는 건 작품이 해주지 않아도 제가 직접 할 수 있잖아요. 근데 자신과 세상, 이 경우엔 감상자와 작품이겠죠, 이 두 가지의 경계선이 사라져서 작품에 몰입하는 건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왼쪽 토요스에 펼쳐진 ‘teamLab Planets’
오른쪽 ‘소프트 블랙홀' ©teamLab
‘언덕 위의 빛의 폭포’ ©teamLab
우노 하나하나의 작품을 향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공을 던져보려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건 플라넷츠였어요. 그래서 제겐 플라넷츠가 더 자극적이었던 거죠.
예를 들어 보더리스는 입구에 메세지가 적어두고, 여기부터 teamLab이 연출하는 ‘경계 없는 세계'가 시작된다고 선언하는 식의 형태에요. 반면에 플라넷츠는 그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관람객을 물속에 들어가게 한다던가(‘언덕 위의 빛의 폭포'), 쿠션 속에 내던지기도 해요(‘소프트 블랙홀'). 2016년 DMM 플라넷츠에서 선보였던 것들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건데, ‘지금부터 완전히 다른 세계가 나올 거에요', ‘긴장하는 게 좋을거에요'라는 말도 없이 일단 체감시키고 보는 거죠. 이런 접근 방식이 더 teamLab다운 것 같아요.
‘The Infinite Crystal Universe’에서 대화중인 두사람. 심야 촬영에 지친 기색이지만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Photographer : 이마죠 준)
‘The Infinite Crystal Universe’ ©teamLab
우노 그 자체가 컨셉이라는걸 이해하지 못한 거네요. 헤매기도 쉽고, 어디가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특정 작품을 보려고 해도 찾아갈 수도 없으니까요. 보더리스는 보더리스대로 좋은데, 플라넷츠는 예고도 없는 데다가 시각뿐 아니라 촉각까지 자극시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역시 갑자기 물속에 들어가게 되는 데다가 깜깜하기까지 한 게 반대로 매력인 것 같아요. 것보다 아트로써 이게 정답인 거죠. 플라넷츠는 촉각에 호소하는 작품이 많은데, 시각과 청각 이외의 촉각, 후각 같은 인간의 오감을 자극해 몰입감을 높이는 표현은 앞으로도 기대되는 부분이 많아요.
또 플라넷츠의 ‘The Infinite Crystal Universe’(이하 유니버스)는, 지금까지의 유니버스 중에서 단연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해요.
이노코 그야 당연하죠(웃음).
‘The Infinite Crystal Universe’
‘The Infinite Crystal Universe’
예전부터 줄곧 해오던 말이지만 유니버스는 공간의 넓이가 키포인트에요. 인간의 상상력으로 저편에 벽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공간 속으로 사람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일으키지 않는 타입의 작품은 작용하지 않아요. 작품의 몰입감을 끌어내기 위해선 인간이 공간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게 해야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선 유니버스란 작품에 ‘넓이'라는 게 필요해지는 거예요. 유니버스는 규모의 퀄리티가 담보된 작품이고, 거울로 된 천장의 높이와 넓은 면적에 의해 완성도가 아주 높아졌어요. 이노코씨가 표현하고 싶었던 몰입감은, 그 정도의 규모가 있었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의사를 갖고 변모하는 공간, 퍼져나가는 입체적 존재’ ©teamLab
‘의사를 갖고 변모하는 공간, 퍼져나가는 입체적 존재’ ©teamLab
이노코 그거 엄청나죠. 저 색은 사실 랜덤이 아니라 공간을 보다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색과, 공간을 평면화시키는 색을 만든 거예요. 어떤 색에서 어떤 색으로 변화할지도 각각의 확률을 한정시켰죠. 이를 통해 공간이 갑자기 평면화하는 듯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우노 좀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순간 평면처럼 보였던 것이 색이 바뀌면서 다시 입체로 돌아가는 듯한 감각이 재밌어요. 오치아이 요이치씨가 말했던 건데, 인간의 눈은 멀리 보이는걸 2차원, 즉 평면적으로 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풍경'이라는 말이 존재하는 거죠. 인간은 멀리 있는 것은 입체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어떤 현상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면 역설적으로 안쪽까지 뻗어있다고 있다고 느끼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평면으로 돌아와도 몰입감이 굉장해요. 아직 개발 중이라고 해야 하나, 좀 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 같지만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다고 생각해요.
‘의사를 갖고 변모하는 공간, 퍼져나가는 입체적 존재’ ©teamLab
‘의사를 갖고 변모하는 공간, 퍼져나가는 입체적 존재’ ©teamLab
이노코의 설명을 토대로 구체를 띄우고 색깔을 바꾸며 놀아본다.
우노 멀리 있는 것을 평면적으로 보고, 가까이 있는 것을 입체적으로 보는 인간의 시각 정보 처리 기능을 한방에 무너트리는 거네요. 이를 통해 공간 몰입감이 더욱더 높아졌고 굉장히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해요. 색을 컨트롤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일이 가능할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볼이 장소에 따라서 위에 몰려있기도 하고 아래에 몰려있기도 한 아이디어도 정말 좋았어요.
이노코 공기 밀도를 컨트롤해 기압을 바꿔서 구체를 움직이고 있죠.
우노 밀도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존재를 인식할 수도 없어요. 그걸 컨트롤해서 아트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도 않고요.
이노코 ‘밀도가 세계관에 압도적인 영향을 준다'라는 건 어떤 뜻인지?
우노 애초에 사람이 사막과 숲을 뭘로 구분하냐면, 궁극적으로는 밀도로 구분하는 거거든요. 도시와 부락도 밀도로 판단하고요. 즉, 살고 있는 식물의 밀도가 높으면 숲이고, 인간과 인공물의 밀도가 높으면 도시인 거죠. 인간은 공간 단위의 농도를 기준으로 세상을 구별하고 있어요.
하지만 별로 인식되는 경우도 없고, 밀도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발상도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색과 밀도는 몰입감과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밀도는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지만, 색채 같은 경우는 실제로 체험해보지 못하면 알 수 없어요. 인간의 눈의 구조와 뇌에 의한 시각 정보처리의 문제니까요.
왼쪽 스틸컷 촬영중, 사진을 확인하며 함께 구체를 파랗게 만드는 두사람. (Photographer : 이마죠 준)
오른쪽 '사람과 함께 춤추는 잉어가 그리는 수면 위의 드로잉’로 들어가는 이노코
이노코 (웃음)
우노 눕는다는 게 심플하지만 참 중요하죠. 유명한 얘기지만, 린 포워드(lean forward)와 린 백(lean back)이라는 자세가 있는데, 예를 들어 컴퓨터를 할 때는 앞으로 기울이는 린 포워드, 티비를 볼 때는 뒤로 젖히는 린 백이라는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이 두 가지는 능동성이 다르다는 전제가 있어요. 이를 생각하면 근대적인 아트는 기본적으로 서있는 상태로 의식을 집중시켜서 응시하면서 감상해요. 이건 뇌의 일부를 극도로 사용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누워서 릴랙스 한 상태를 만들면 그만큼 해방되는 회로가 분명히 있을 거란 말이죠. 이런 부분에 어필하는 아트가 원래는 더 많아야 하는 게 이치에 맞는 거고요. 굉장히 심플하지만 누워서 관람하는 것이, 아트 씬에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결정적으로 확대시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이노토씨와 함께 갔을 때도 커플이 굉장히 많았었잖아요. 그곳에서 커플들이 릴랙스하면서 둘만의 세계를 만들며 꽁냥거리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했어요. 플라넷츠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고 느꼈죠.
이노코 뭐, 보더리스의 ‘Crows are Chased and the Chasing Crows are Destined to be Chased as well, Transcending Space - Floating Nest’(이하 크로우스)같은 경우도 누워서 관람하는 형식이긴 해요.
우노 그래도 플라넷츠가 좀 더 이런 경향이 강하잖아요. 보더리스는 다들 뭔가 대단한 걸 보려는 생각으로 누워있으니까요.
이노코 그렇죠. ‘크로우스'도 그물을 이동해서 누울 때까지가 모험같은거니까.
우노 무섭네요.
이노코 무서워요(웃음). 떨어질 것 같거든요. 그 작품은 거의 모험에 가깝죠.
우노 액티브한 관객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보더리스는 굉장히 완성도 높은 전시에요. 하지만 ‘자, 지금부터 전시 보러 갑니다!’ 같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부담 없이 찾아가고 즐길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한 게 teamLab의 매력이잖아요. 서서 집중해서 감상하는 게 아니라, 관람객이 편하게 누워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매력인 거죠.
이노코 하하하. 재밌네요.
우노 좀 이상한 얘기지만, 보더리스가 훨씬 평론하기는 쉬워요. 메세지도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참신함이 그 이유죠. 하지만 정말 실험적이고 teamLab만 할 수 있는 건 플라넷츠인것 같아요. 사실 미후네야마(A Forest Where Gods LIve)와 비교하면서 보는게 이상적이긴 한데, 미후네야마에 갈 수 없는 사람은 플라넷츠와 보더리스를 세트로 봤으면 좋겠어요.
그러고 보면 이 세 전시를 동시에, 그것도 각각 다른 형태의 전시를 하고 있는 게 대단하네요. 이노코씨도 참 욕심 많은 사람이에요.
‘Floating in the Falling Universe of Flowers’ ©team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