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작품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꽃이 피고 진다. 한 해 동안 계절 따라 피는 꽃들이, 한 시간 만에 바뀌어 간다.
꽃들은 생겨나 자라고 흐드러졌다가는 끝내 시들어 사라져 간다. 탄생과 죽음을 끝없이 거듭한다. 사람들이 가만히 서 있으면 꽃송이가 평소보다 더 많이 피어나지만, 만지거나 주변을 거닐면 일제히 꽃잎을 떨군다. 그리고 별도의 작품인 ‘물 입자의 우주, Transcending Boundaries’의 물 입자와 닿아도 지곤 한다.
작품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실시간으로 그려져 간다. 사전에 기록된 영상을 재생하는 방식이 아니며 이전의 상태가 되풀이되는 경우도 없다. 사람들의 움직임의 영향을 받아들여 끝없이 변화해 간다. 지금 이 순간의 장면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
그리고 별도의 작품인 ‘Universe of Water Particles, Transcending Boundaries’의 물길에 영향을 받아 꽃송이가 지기도 한다.
지난 봄, 어느 골짜기를 찾았다. 산벚꽃이며, 비탈의 유채꽃을 보자니 사람이 심었는지 스스로 피었는지 궁금해졌다. 온갖 꽃이 난만한, 참으로 근사한 장소였다. 꽃이 많다는 사실은, 그 자연이 인간의 영향을 받은 생태계임을 알려 준다.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부터가 인위인지 경계도 극히 모호했다. 자연과 인간은 대립된 개념이 아니며, 근사한 자연이란 인간사도 아우르는 생태계라는 걸 느끼게 해 주었다. 근대의 믿음과 달리 인간이 자연을 온전히 파악할 수도,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었기에, 기나긴 시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이 근사한 경관을 가꾸어 온 것은 아닐까. 골짜기의 마을은 근대 이전에는 바닷길이 지나는 길목이어서 번성했지만, 근대에 들어 육로 중심으로 바뀌면서 육지의 외딴 섬이 되고 말았다. 그 덕분에 근대 이전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어렴풋이 남아, 제어할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자연을 향한 인위적 행위란 어떤 모습인지를 사유하게 했다.